소림 심의파의 계승자, 덕건스님

덕건 스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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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 심의파의 계승자, 덕건스님

소림 심의파는 아직도 조금은 신비에 싸여 있는 것 같다. 한국인 중에서 덕건(德建)스님의 제자가 된 사람이 있는가 여부도 잘 모르겠고, 시중에 구체적인 정보도 별로 나와 있지 않다.

나는 덕건 스님의 제자라고 할 만한 사람은 못되지만, 스님과 작은 인연이 있어서, 스님을 직접 뵙고 심의파 무술에 대한 자세한 것을 친견하고 일부를 배우기도 했다.

그래서 이 글은 정보가 별로 없는 소림 심의파에 대한 작은 기록을 남기기 위한 것이며, 일종의 아카이빙 목적으로 쓰게 되었다. 후일 심의파 덕건 스님에게서 모든 것을 제대로 배운 정식 제자가 나타난다면, 보다 자세한 것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한국인 제자가 있다면)

덕건 스님은 마츠다 류우치 원작의 무술 만화 ‘권아’에 등장하는 그 분이다. 일명 소림사 최강의 스님이라고도 하며, 소림사 안에서도 다른 무승들과 차별화 되는 분 이다. 본명은 정굉본(丁宏本)이며, 하북성 창저우에서 태어난 흑룡강성 출신 회족이다.

스님은 소림사 배분으로 제31대 이며, 무술로 유명한 ‘소림사 영화당(少林寺永化堂)’ 소속의 제19대 무승이다. 소림사는 18개 계파의 암자가 있는데, 그중에 무술과 의술로 가장 유명한 곳이 소림영화당(少林永化堂)이다. 주로 무술과 의술을 연구한다. ‘천하의 무공은 소림에서 나오고, 소림 무공은 영화당에 있다(天下功夫出少林,少林功在永化堂)’는 말 까지 있을 정도이다.

덕건 스님은 회족 출신인데, 스님이 된 특이한 경우다. 스님은 1979년부터 킥복싱을 하다가 소림사에 들어온 것은 1982년이다. 소림사에 있던 1985년에 전국 킥복싱 대회에 나가 70kg급 2위를 한다. 그 후 1990년도에 소림사 30대 주지였던 소희 스님을 스승으로 모신 것이다. 심의파 무술은 의부였던 장경하 문하에서 배웠다. 당시 장경하 노사는 소림사 근처에 살았다.

십 수년전, 몇가지 인연으로 소림사 삼황채에 방문하게 되었다.
TV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프로덕션에서 ‘동양의 무술 10부작’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 10부작 다큐의 코디네이터와 기획을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덕건스님은 웬만하면 외부인을 잘 만나주지 않기로 유명하다. 한국의 방송팀에서 방문하겠다고 소림사에 연락했지만, 덕건 스님은 외부인과 만나지 않으신다는 답변을 받았다.

중국은 뭐니뭐니 해도 꽌시 사회다. 꽌시가 있으면 안되는 것도 되는 곳이 중국이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나의 지인을 통해서 진가태극권의 고향인 하남성 진가구를 거쳐 덕건 선사와 연결이 되었다. 진가구 태극권 학교의 교장이신 진소성 노사가 힘을 써 주시고, 소개장까지 친히 써서, 조카딸 손에 들려 소림사로 보냈다.

나중에 또 얘기하겠지만, 덕건 스님은 진가구와 인연이 있는 분 이시다. 그런데 진가태극권 장문인인 진소왕 노사의 조카딸이 친필 소개장과 편지를 들고 소림사까지 동행했으니, 스님도 안 만나줄 방법이 없으셨던가 보다.

등봉현에서 전화를 하니, 덕건 스님께서는 “방문하면 환영하겠다, 하지만 방송카메라 촬영은 하지 않겠다, 차 대접이나 받고 돌아가시라” 라고 하셨다.

어쨌거나 숭산의 험준한 바윗길을 2시간을 걸어 올라서 삼황채에 닿았다. 이 2시간의 산길의 험준함은 설악산 오색코스 수준의 강도였는데, 산길도 변변히 정비되어 있지 않아 힘겨웠다.

삼황채는 소림사 근처에 있는 것이 아니며, 숭산 반대편 해발 1300미터 고지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관광객이 오지 않기 때문에 상당히 조용한 곳이다.

진가구 진씨가문의 조카딸은 한국에서 대학 유학을 했기 때문에, 한국어에 상당히 능통하고, 태극권 실력도 매우 훌륭한 아가씨 였다. 덕분에 무술인들에게 필요한 내용에 대해서 상당히 자세한 통역이 가능했다.

덕건스님은 처음에는 방송촬영을 하지 않겠다고 하셨고, 그저 차를 나누며 예의를 차린 차담만 하셨다. 그런데 한시간쯤 대화를 하다보니 뭔가 마음이 동 하셨던 모양이다.

나에게 혼자서 스님의 방으로 들어오라 하시면서, 다른 사람들은 들어오지 말고 바깥에서 쉬면서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스님 방은 참으로 검소하고 소박해서, 스님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작은 방안에 한쪽에 침대가 있었고, 대충 4-5평 정도의 공간이었을 뿐 이다.

덕건 스님은 그 좁은 방 안에서 소림 심의파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기술들을 하나 하나 보여주셨고, 단련방법을 순서대로 보여주시며 따라 해보게 하셨다. 심의파(心意把)의  ‘파把’는 하남성 사투리로 권법을 의미한다고 하니 심의파는 심의권과 같은 말이다. 

그리고 웃통을 벗고 상체를 다 드러내시더니, 당신의 몸의 움직임과 미세한 근육 움직임을 직접 보고 만져보게 하셨다. 스님이 웃통 벗고 방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무술 시범을 하셨으니, 참으로 진귀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스님이 웃통을 벗으신 이유는 복부의 움직임을 직접 보고 만져보라는 이유였다. 스님은 횡격막 아래 복부 전체의 근육과 장기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신기한 것을 보여주셨는데, 덕건스님이 보여준 심의파의 비전은 나울리와 비슷했다.

인도 하타요가에서는 ‘나울리’라는 것이 있다. 나울리 크리야를 말하는데, 복부 요동법 으로써, 요가 정화 행법의 한가지 이다. 웃디아나반다(Uddiyana-Bandha, 복부잠금법)와 나울리 크리야(Nauli Kriya, 복부요동법)는 하타요가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웃디아나반다는 부교감신경을 자극하지 않고서도 교감신경의 과도한 활동을 통제하는 수행법인데, 웃디아나 반다를 유지하는 가운데 수행되는 나울리 크리야는 복부근육집합에서 두 개의 복부직근을 수축하여 분리하고 이를 시계방향이나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한다.

요가에서는 정화행법으로써 반다와 나울리 크리야를 행하지만, 심의파는 이것을 무술 연공법에 실제 적용하고 있었다.

심의파는 나울리를 단순히 신체 정화로만 하는것이 아니라, 중단전과 하단전을 통합하여 더 큰 힘을 내기 위해 이런 공법을 행하는 것이다.

위 유튜브 영상에서 인도인이 보여주는 나울리 크리야보다, 덕건 스님의 시범이 훨씬 더 역동적이고 컸다. 스님은 복부를 수축하여 몸통 한쪽에 핸드볼 공 만한 크기의 구체를 만들었고, 이것을 좌로 회전 시키고 우로 회전시키기를 반복 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아주 빠른 속도로 구체를 회전 시켰는데,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팔괘장의 주요 공방기법은 대표적으로 ‘엄주-료-천장’의 루틴이다. 다른말로 ‘곤 찬 쟁 과’라고도 한다. 이때 상대 몸통에서 바깥 방향으로 빠져나가며 기술을 걸게 되는데, 팔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은 팔괘장이 아니다. 이 부분은 아이키도와 팔괘장이 비슷하다.

심의파의 대표적인 기술들은 어딘가 팔괘장의 곤찬쟁과와 통하는 바가 있었다. 결국 소림 심의파의 비전과 핵심은 팔괘장의 혼원경과 일맥상통 하는 것 이었다.

단전에 힘을 넣고, 흉강을 확장시켜 코어를 단단하게 해서 힘을 낼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든다고 해도, 결국 이 힘 들을 비틀어 발출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 이다.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하단전과 중단전을 팽창시키고 복압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격투 중에 빠른 속도로 뛰고 움직이면서 이런 몸의 상태를 만들어 낸다는것은 극히 어려운 일 이다. 일반적인 사람은 움직이는 순간 복압이 풀리기 때문이다.

힘을 비트는 전사, 떨어뜨리는 침추, 이 모든 힘을 단전에서 3차원으로 꼬아서 힘을 내는것, 태극권 형의권의 힘쓰는 원리가 합쳐진 형태, 이것이 팔괘장의 혼원경이다.

이런 힘들이 꼬여서 회전하며 힘을 만들어 내는 곳은 코어를 중심으로 한다. 심의파의 훈련들은 이 힘을 만들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

심의파의 기술은 결국 단 한가지 수(手)로 귀결된다. 한가지 수가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며, 이 한 수를 익히지 못하면 다른것도 할 수 없다. 복부 코어 안에서 일어나는 이 현상을 심의파에서는 ‘내경’이라고도 한다.

덕건스님도 이 모든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태극 형의 팔괘를 두루 공부하셨다면서, 태극권을 공부하기 위해 진가구에서 한달간 장기 체류하신 적이 있다고 하셨다. 그때 진가구 사람들과 친분이 생기신 것 이었다.

덕건 스님은 팔괘장의 동작도 보여주시면서, 심의파의 대표기술들을 팔괘장으로 풀어내면 이러저러 하게 된다고 하셨고, 다시 태극권 식으로 풀면 이런 형태로 변화한다시며, 일일이 시범을 보이셨다.

전설과는 달리, 소림 심의파의 역사는 투명해 보이지 않는다. 청나라 도광 연간에, 하남성 순무(巡抚)였던 린칭(麟庆)이 소림사를 방문한다. 순무(巡抚)는 하남성 성장, 즉 도지사급의 지방관료다.

린칭은 여러가지 이유로 승려들의 무술수련을 금지하는 명을 내렸다고 하며, 소림사에서는 무술을 보존하기 위하여 후계자인 적근(寂勤)스님을 도망가게 하였다고 한다. 적근 스님의 속명은 오고륜(吴古轮)이다. 다른 설 에는 청나라 동치제때 적근스님이 절을 나와서 환속하였다고도 한다. 적근스님 오고륜에 대한 기록은 부정확 한 것이 많아서, 어느것도 신뢰하기는 어렵다.

도광 연호는 청나라 선종(宣宗, 재위 1820∼1850)의 연호이며, 동치제는 청나라의 제10대 황제(재위 1861년 ~ 1875년)이니, 중간에 문종 함풍제(咸豊)를 건너 뛰었지만, 적근(寂勤 1830-1927)스님은 도광제때부터 동치제를 지나, 마지막 황제 푸이 선통제때까지 생존했다는 것이다. 98세까지 살면서 청 황제 5명을 본 셈이다. 불가능 한 것은 아니지만, 글자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전설에 의하면 속세로 도망간 적근 스님은 환속을 한 후에 속가제자를 양성했는데, 두부장수 임학량(林鹤良), 둘째아들 오산림(吴山林)이 대표적이다.

이 계보는

1대 : 적근(寂勤)스님 이었던 오고륜(吴古轮) (1830-1927)
2대 : 임학량(林鹤良), 오산림(吴山林) (1875-1970)
3대 : 장경하(张庆贺)
4대 : 석덕건(释德建), 오남방(吴南方) 으로 이어진다.

2대 전인 오산림은 소림사 주지 정서(贞绪)스님의 요청에 따라 말년에 소림사로 돌아와서 제자를 양성했다고 전한다. 오산림(吴山林)은 1875년에 태어나서 1970년에 사망하였다.

오산림의 대표적인 제자는 정서(贞绪) , 덕근(德根), 덕선(德禅), 행장(行章), 양규오(杨桂吾), 장경하(张庆贺), 교흑보(乔黑保 외손자), 오천유(吴天有), 오유덕(吴有德)등이 있고, 소림사 근처에서 살고 있던 속인 신분의 3대 전인인 장경하는 4대 석덕건에게 법을 전수하였다.

전체적인 계보를 살펴볼때, 적근스님이었던 오고륜이 속세에서 낙양 심의육합권을 배운 것 같으며, 그래서 오고륜을 제1대로 계산하는것이 아닌가 싶다.

소림사 계보로도 오고륜이 심의파 제1대 라는 것이 수상한 부분이다. 제1대라는 것은 사실상 개문 조사로 인정한 셈이다. 3대 장경하도 속인이었고, 소림사 근처에 거주하던 즈음에 젊은 덕건 스님을 만나서 심의파를 전수하였다. 장경하 노사는 후일 행성 법사(行性 法师)로 불리는데, 불가에서 법사는 비구승이 아니고 민간 속인이며, 교회에서 장로와 같은 민간인의 계급이다.

오래 전에 희제가가 소림사에 들렀을때 무엇인가 전했다는 전설과 현재의 소림사내 심의파가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소림 심의파 제1대는 오고륜이기 때문이고 이 사람은 현대의 인물이다. 희제가가 전한 심의육합권을 현재까지 온전히 계승하고 있다면, 희제가가 제1대가 되어야 할 것이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래된 현대무술, 소림권

소림사의 심의파는 일자전승의 비전 중의 비전이라고 광고하지만 사실 속세에 있던 낙양 심의육합권이 소림사로 흘러들어가 비전으로 둔갑한 것이다. 현대 소림사의 무술 중에 과거로 부터 전해지는 유산이 뭐가 있는가? 선종의 고찰인 소림사는 선의 맥마저 끊어진 마당이다. 극동아시아의 선불교는 소림사 달마대사를 초조로 하지만, 정작 소림사에는 선종의 맥이 끊어져서 참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스님도, 가르칠 수 있는 스님도 없다. 현재의 소림권도 현대에 북파무술을 모아서 집대성 한 것이다. 19세기부터 전해져 오는 소림권은 없다.

소림 심의파도 소림사 바깥에 또다른 계파들이 있다. 각자 ‘소림 심의파 협회’를 만들어서 사회단체 등록을 하고 나름 활동을 하는 중이다. 아마도 계보에 나오는 다른 속인 제자들의 후계자들로 추측된다. 1대 조사도 속인이고, 2대도 속인이고, 3대 전인 장경하도 스님이 아닌 속인이었다. 덕건 스님도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심의파를 배우기 시작했고, 나중에 소희선사의 제자로 출가하여 소림사의 정식 비구승이 되었다. 그러니 소림 심의파는 오직 한명에게만, 그것도 스님에게만 전수한다는 마쯔다 류우치와의 인터뷰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현재 소림사 삼황채에서 덕건스님이 전하는 심의파는, 심의육합권이 힘쓰는 방법에, 태극권의 흐름과 소림사 소홍권이 기술이 합해진 것이다.

현재 소림사 삼황채에서 덕건스님이 전하는 심의파는, 심의육합권이 힘쓰는 방법에, 태극권의 흐름과 소림사 소홍권이 기술이 합해진 것이다.

현재 소림사 삼황채에서 덕건스님이 전하는 심의파는, 심의육합권이 힘쓰는 방법에, 태극권의 흐름과 소림사 소홍권이 기술이 합해진 것이다. 즉 자신 만의 독문무공인 셈이다. 그런 심의권이 모습이 어딘지 팔괘장의 모습과 유사하다. 힘쓰는 방법이나 내장을 제어하는 방식, 힘을 발출하는 방식, 기술 등이 팔괘장과 비슷한 점이 있다.

소림권은 중국 전통 권종 중 하나이다. 중국 무술 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유파로서, 강건하고 힘차며, 소박하고 꾸밈없는 기술로 국내외에서 명성이 자자하다. 소림권은 역사적으로 여러 번 흥망성쇠를 겪었으며 우리가 보는 소림권은 현대무술인 소림권이다.

스님의 설법을 내가 찰지게 잘 이해하는 듯 보이니까, 기분이 좋아진 덕건스님은 휴대폰으로 당신의 연무를 전부 촬영하게 하셨고, 이 영상은 외부에 공개하지 말 것을 수차례 신신당부하셨다. 그리고 책자와 심의파 영상이 들어있는, PC에서 구워 만든 CD를 7-8개 주시면서, 이걸 열심히 보면서 연습해보라고 하셨다.

덕건스님의 사제이자 제자에 해당하는 분이 석덕방 스님이다. 덕방(德方) 스님은 소희 선사에게 배사하여 제자가 되었고, 덕건 스님과 함께 덕자 항렬을 받았다.

덕방 스님의 속명은 오남방(吴南方)이며, 하남성 언사(偃师) 사람이고, 1962년생이며, 1995년에 불문에 입문하여 소림사 소희선사의 제자가 되었다. 언사시(偃师市)는 숭산의 10시 방향에 있는 하남성의 지역으로써, 숭산 자락으로 보아야 한다.

덕방 스님은 소림심의파 1대인 오고륜(吴古轮)노사의 현손(玄孙)이며, 2대 오산림(吴山林)의 증손(曾孙)인 분 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덕방스님은 덕건스님의 스승님 가문의 증손자 라는 것이며, 몇대를 넘어서 심의파를 개문 조사인 오씨 집안에 다시 물려주게 되었다는 뜻이다.

덕건 스님은 덕방 스님을 불러서, 심의파 무술을 시연하게 하고, 이 연무도 촬영하게 하셨다. 덕건 스님의 연무와 덕방 스님의 연무를 비교해서 공부하라는 뜻 이셨다.

소림 심의파 일타강사 2명의 맞춤형 1:1 족집게 강의를 두시간이나 수강한, 기연을 만난 날 이었다.

이렇게 스님방에서 1:1 쪽집게 레슨을 2시간 동안 해주신 스님은, 방에서 나와 밖에 기다리던 방송팀에게 간단한 동작시연을 촬영하도록 허락 하셨고, 덕분에 방송팀은 빈손으로 하산하지 않게 되었다. 스님은 삼황채 남천문까지 우리를 배웅해 주셨고, 나는 산문 앞 땅바닥에서 스님께 세번 절을 하고 하산하였다.

팔괘장의 기초와 선행 무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의파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덕건스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몸으로 구현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고수의 시범을 보자마자 따라 할 수 있는것은 무협지에서나 가능한 일 이기 때문이다. 팔괘장을 알기 때문에 심의파를 이해할 수 있었고, 심의파를 이해하고 나니 팔괘장의 특징과 차이점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덕건스님을 만났을때 스님의 나이보다, 현재 내 나이가 더 많아졌다. 스님도 이젠 환갑이 넘으셨으니, 조금은 더 늙으셨을 것이다.

내 인생동안에 스님에게서 무술을 배운 것은 두 번이다. 월우 스님에게서 단태봉을 배웠고, 덕건 스님에게서 심의파의 원리를 배웠다. 남은 인생동안 무술을 배울 세번째 스님은 아마도 없을 것 이지만, 스승으로 모신 세번째 스님은 또 있다.

덕건스님와 헤어질때, 스님은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에게 무술이 아니라 불법을 가르치고 싶다” 라고.

그 인연인지는 모르나, 나중에 백담사 유나 영진 큰스님에게서 법명을 받았고, 간화선을 배웠고, 화두를 받았으니, 불문의 제자가 아닌가 한다.

혹여 다시 덕건 스님을 만나게 된다면, 이제는 심의파와 선불교에 대해서 질문해 보고 싶다. 덕건 스님의 희망이 이루어 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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